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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일반

세계유산 ‘정릉 재실(齋室)’ 최초 복원(復原)

대한민국 정체성의 힘으로 미래로 나간다

   
▲ 정릉 정자각에서 대동종약원이 고유제를 올리고 있다(사진=장해순 기자)
     
 

조선의 건국이념이자 통치철학은 어질고, 의롭고, 예의가 바르며, 지혜로움의 인의예지(仁義禮智)와 민본(民本)을 내세웠다. 보존되고 있는 유‧무형 문화유산을 살펴보면 단아하고 담백하여 품격이 있으며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기개(氣槪)와 위민(爲民), 애민(愛民) 정신을 담은 긍정적인 조선의 역사적 숨결을 만날 수 있다.

14세기 말 우리의 선조들과 같이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통해 뚜렷한 건국이념과 합리적인 통치철학을 밝히면서 출범한 나라는 이 지구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조상의 지혜를 이어받아 미래로 나가는 동력으로 ‘정릉 재실’ 복원의 의미가 있다.

 

정릉의 역사적 수난

정릉은 조선의 제1대 왕 태조의 계비(繼妃)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 강 씨의 능이다. 원래는 현재보다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중구 정동에 있었다. 그러나 태조가 승하(1408)하자 신권보다 왕권을 중시한 태종의 정릉 격하가 시작되었다. 정릉이 도성 안에 있다는 이유로 1409년 현재의 위치로 능을 이장하고, 중국 사신의 숙소를 짓는데 정릉의 정자각을 뜯어 건축 목재로 사용하였다. 청계천 홍수 때는 정릉의 병풍석을 다리 복구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정릉은 폐허처럼 방치되다가 1669년(현종 10)에 의해 정비되었고 1900년에 재실을 다시 지었다가 초석만 남기고 1960년대 멸실 되었다.

   
▲ 조선왕릉관리소 김정남 소장이 상량문을 봉안하고 있다(사진=장해순 기자)

재실의 복원

3월 25일(수) 서울 정릉에서는 1960년대 소실되었던 재실(齋室)의 복원식이 열렸다. 문화재청은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능제복원 차원에서 2012년 재실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고, 조사를 통해 1788년에 발간된 춘관통고(春官通考)의 기록과 일치하는 6칸 규모의 재실 터와 건물 배치 등 양호한 상태의 유구를 확인하였다. 이 같은 발굴조사와 사료를 근거로 2012년부터 3년간 정릉 재실의 본채, 제기고, 행랑, 협문과 담장 등을 관계 전문가의 자문과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총 사업비 15억 원을 들여 복원하여 기념식을 하고 국민에게 공개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정릉 재실의 복원은 대한민국 정체성이 바르게 정립되는 자원이 되기를 염원한다.”고 밝혔다. 행사를 주관한 조선왕릉관리소 수리복원팀 장기순 씨는 “남한에 남아있는 40기의 왕릉 가운데 재실 복원은 정릉이 최초"라며 ”앞으로 토지 매입 등의 노력으로 재실을 복원해 나갈 예정.“ 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성균관 다례원 이현주 원장은 나선화 문화재청장과 김정남 조선왕릉관리소장, 주한영국문화원 마틴 프라이어(Martin Fryer) 원장을 비롯한 각국 대사 부인들과 귀빈에게 다과를 대접했다.

   
▲ 성균관 다례원 이현주 원장이 귀빈들에게 다례로 대접하고 있다.(사진=장해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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