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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우정으로 맺은 경남대 박재규 총장과 라냐 전 국제사격연맹 회장

세계 평화와 교육, 남북정상회담의 산증인 경남대 박재규 총장(전 통일부 장관)과 김선향 북한대학원대 이사장(현 대한적십자사 고문)은 멕시코 사격 영웅인 올레가리오 바스께스 라냐(이하 라냐) 전 국제사격연맹 회장으로부터 국빈대우급 초청을 받아 지난 3월 멕시코를 방문했다. 멕시코 유력매체가 대서특필로 보도해 멕시코 국민들이 알아볼 정도였다. 글로벌 리더 두 주역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조명해본다.     

 

수마야 박물관에서 나란히 손잡은 삼형제. 왼쪽부터 박재규 총장, 빅브라더 라냐 회장, 경제 대통령 카를로스 슬림 회장.


1978년부터 시작된

멕시코 라냐 회장과 40년 우정 그리고 스포츠외교

우리나라가 유치한 최초의 세계대회는 1978년 개최한 세계사격선수권대회다. 2018년에는 40년만에 경남 창원시에서 제5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사격은 최근 올림픽대회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 있는 스포츠 종목으로 성장했는데 그 이면에는 남다른 스포츠외교사가 전해진다. 박재규 총장과 멕시코 라냐 회장의 인연에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 총장은 1978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 대회에서 조직위원회 국제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때 박 총장은 국제사격연맹의 임원으로 참석한 라냐 회장을 처음 만났다. 사격선수로 뛰던 현역 시절 4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화제의 인물이었다. 이 첫 만남은 88서울올림픽 유치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42회 세계사격선수권 대회 직후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준비위가 시작되었지만, 당시 10·26사태라는 정변이 발생해 국내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다. 30대 초반의 박 총장과 40대 초반의 라냐 회장은 조용히 스포츠외교 활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88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유치되었다. 박 총장은 “84 LA올림픽이 동구권이 빠진 반쪽이었다면, 88 서울올림픽은 소련과 동구권이 마침내 참가한 하나된 올림픽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 라냐 회장이다고 말했다. 그 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문제에 대해 생산적인 자문을 하였지만, 두차례 연속 실패하고, 세 번째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는 성공했다.

 

경남대를 방문했던 라냐 회장 일행과 수마야 박물관 로댕홀, 로댕의 작품 세망령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


2012, 박재규 총장, 라냐 회장, 카를로스 슬림 회장 삼형제되다

시간을 거슬러 201246일 창원 한국사격역사관 개관식에 창원시와 경남대학교는 라냐 회장 일행을 초청했다. 박 총장과 라냐 회장은 오랜만의 해후였다. 이때 라냐 회장과 동행한 세계 제1의 갑부였던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 텔맥스텔레콤 회장은 박 총장에게 언제부터 라냐 회장과 친하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박 총장은 1978년부터 형제처럼 가깝게 지낸다고 답하자, 슬림 회장은 늦었지만 형제가 되고 싶다고 제안해 세 사람은 삼형제가 되었다. 큰형 자리는 라냐 회장이 차지하고, 카를로스 슬림 회장은 연령에 관계없이 막내를 하겠다고 자처했다. 한편, 라냐 회장은 196418회 동경올림픽부터 197621회 몬트리올 올림픽까지 4회 연속 올림픽에 참가한 멕시코 사격 영웅이다. 그 외 국제사격연맹 회장, 아메리카사격연맹 회장, 멕시코스포츠연맹 부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멕시코올림픽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재임 기간 9번의 올림픽과 11번의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이끌었다. 카를로스 슬림 회장은 빌 게이츠와 세계 1~2위를 다투는 갑부이며 텔맥스텔레콤은 우리나라 삼성의 제품을 많이 사주는 곳이라고 한다.

 

라냐 회장 가족과 오찬.


국빈대우급 멕시코의 초청장

박 총장은 20189월 창원에서 열린 제52회 세계사격선수권 대회에서 라냐 회장을 다시 만나 성공적 대회를 위해 협력했다. 이어진 라냐 국제사격연맹 회장 은퇴식에서 38년간 성공적 개혁과 업적, 그리고 한국스포츠 발전을 위한 지원에 대해 축하와 감사를 표했다. 출국 전 라냐 회장 내외는 박 총장과 김 이사장에게 아름다운 초청장을 남겼다. 두 사람은 애틀랜타(미국)와 아바나(쿠바)를 경유하여 2019년 봄 멕시코를 꼭 방문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멕시코 이메진 TV와 인터뷰하는 박재규 경남대 총장과 김선향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사장.


멕시코 이메진(IMAGEN) TV와 엑셀시오르(EXCELSIOR) 신문 인터뷰

라냐 회장은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을 자신의 저택으로 초청해 오찬을 열었다. 1시에 시작된 점심 식사 시간은 세시간이 넘도록 이어졌고 4시부터는 저택 곳곳에 설명을 들으며 탐방했다.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이 저녁에 호텔로 돌아가려고 하자 라냐 회장은 방송국 구경을 제안했다. 따라 간 곳은 멕시코의 유명한 방송국 이메진TV이었다. 오찬이 길어진 이유는 나중에 알고 보니 라냐 회장의 서프라이즈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고 없이 라냐 회장의 방송 초대에 박 총장은 캐주얼 차림인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라냐 회장은 문제 없다고 말했다. 스튜디오로 들어서자 불이 환하게 켜져있고 경남대학교 로고와 캠퍼스가 배경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라냐 회장은 김 이사장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에 김 이사장은 즉흥 인터뷰는 못 한다고 말하자 라냐 회장은 이사장은 부엌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고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니 그 모습을 보여줘라고 설득했다. 김 이사장은 경남대를 홍보하는 영상이 돌아가고 있어 차마 마다할 수 없었기에 박 총장과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멕시코의 유력매체인 이메진 TV30분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질문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한 모습, 박 총장의 약력에 따라 배경 장면이 바뀌는 세심한 연출에 놀랐다.

 

인터뷰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는 라냐 회장과의 40년 우정이 의형제로 발전한 얘기와 멕시코 대학 방문계획과 경남대·북한대학원대학교의 특성화 분야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리고 1980~90년대와 달리 양국민들의 경제, 문화, 관광 등에 관심이 높아져 양국대학들의 교류·협력이 활성화 되면 양국관계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강조했다. 우리는 하노이 북·미 회담 후 평양·워싱턴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지만, ·북과 북·미가 약속한 한반도 평화구축과 완전한 비핵화 해결을 위해 남·, ·, ·미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관계가 밝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엑셀시오르 신문도 촬영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어 또 깜짝 놀랐다. 멕시코 언론의 힘이 얼마나 큰지 다음날 아침 실감했다. 아침 신문에 대서특필로 보도된 내용을 본 호텔 직원이 신문에서 봤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멕시코 현지인들도 알아보고 환호했다.

 

수마야 박물관 로댕홀에서 카를로스 슬림 회장(오른쪽) 초청 만찬, 왼쪽부터 라냐 회장, 김선향 이사장, 박재규 총장, 라냐 회장의 부인


수마야 박물관 로댕홀에서 열린 만찬

수마야 박물관은 세계 최고 박물관 중의 하나다. 카를로스 슬림 회장은 수마야 박물관 로댕홀 조각상 앞에 만찬장을 마련하고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을 초대했다. 로댕홀은 로댕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다.

 

아나후악 (Anahuac) 대학의 부총장, 학장, 원장, 라냐 회장(왼쪽에서 7번째)과 기념 촬영.


경남대는 아나후악대와 라살르 대학과 MOU 합의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은 하루에 한 대학씩 3일 동안 멕시코 대학교를 방문했다. 이때 라냐 회장은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고 지켜보며 함께 했다. 아나후악(Anahuac) 대학, 라살르(La Salle)대학 그리고 우남(UNAM)대학을 방문하고 두 대학과 MOU합의를 했다.

 

라살르대학의 돈키호테상 앞에서 알바르제 (ALVAREZ) 총장과 함께.


김선향 이사장의 눈과 입을 통한 생생한 현지 체험

김 이사장은 이화여대, 경희대, 경남대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7세기 영국의 대표 시인인 존 던의 연가를 한글로 번역해 소개했다.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시절 봉사의 보물섬 대한적십자사 레드크로스아너즈클럽을 창립해 사회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은 쿠바로 가기위한 입구로 애틀랜타를 선택했다. 애틀랜타는 기후도 좋고 한국 기업이 많이 들어가 있는 곳이었다.

 

애틀랜타에서

김 이사장이 애틀랜타로 향한 또 다른 이유가 궁금하다. “마거렛 미첼여사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자취를 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가이드에게 애틀랜타 시내에 있는 미첼 여사가 소설을 집필했던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졸랐다. 집 주변 가까이에서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잘 알지 못하는 행인들 때문에 한참을 걸려서야 그 집을 찾았다.

 

김 이사장에게 미첼 여사는 어떤 분이냐고 물었다. “1936년 그 유명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완성하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 후 영화로 제작되었고 당시 성경을 빼곤 세상에서 제일 많이 읽힌 책이었다고 말했다. Atlanta Journal 기자였던 미첼은 넘어져서 발목 부상으로 일을 못하게 되자 남편이 날라다주는 도서관 책들을 읽던 중 소설을 직접 써 보라는 남편의 권유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 한다.

 

소설의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1861-1865)으로 남부 연합군과 미합중국 북부 군과의 오랜 전투로 군인 62만 명이 죽고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서야 링컨대통령의 북부가 승리하고 노예제가 폐지된 참혹한 내전이다. 소설은 전쟁의 참화에서 일어서는 의지력 강한 여인의 생존력을 그리고 있다. 박물관이 된 미첼의 집에서 마침내 영상과 사진으로 주인공 스칼렛을 만날 수 있어 김 이사장은 소원을 풀었다.

 

킹 목사 기념공원에 세워진 비폭력 저항운동가간디상.


킹 목사 내외 무덤 (킹 목사 명언 : “도전과 갈등의 순간이 인간을 판단하는 최고의 척도이다”).

 

애틀랜타에서 방문한 킹 목사 국립기념관, 지미 카터 대통령 기념관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은 킹 목사 내외의 무덤, 킹 목사 기념관 공원, 지미 카터 기념관도 방문했다. King 목사는 흑인 인권 회복 운동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비폭력 저항운동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를 스승으로 존경했다. 킹 목사 내외의 무덤은 파란 물이 채워진 가운데에 조성된 것을 보고 놀라웠다고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북미 관계가 무력충돌 상황으로 악화된 19946월에 평양을 방문하여, 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기로 김일성 주석과 합의(9410월 북미 제네바 합의)했다.

 

미국 카터 전 대통령은 19946월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그 해 78일 김일성 주석 사망).

 

사회주의 국가 쿠바 혁명의 역사

오래도록 보기를 열망했던 곳 쿠바, 그곳은 카리브 해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로 북한과 견주어 어떤 삶을 볼 수 있을 지가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의 관심이었다. 쿠바는 인구 1100만에 스페인어를 하고 아바나가 수도이다.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후 19세기까지 400년간 스페인 식민지였고 사탕수수 농장에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수입되었다. 농장주 카를로스 세스페데스는 10년간 독립전쟁을 벌렸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시인이자, 민족지도자인 호세 마르티(1853-1895)는 독립전쟁에서 전사한 쿠바의 독립영웅이다.

 

카스트로는 호세 마르티를 혁명의 두뇌로 생각했으며 큰 영향을 받았다. 쿠바인들이 부르기 좋아하는 노래 관타나메라(Guantanamera)’(관타나모의 여인)의 가사도 호세 마르티의 시이다. 아바나에 정박했던 미국 선박 메인호 폭발 사건(1898)으로 미·서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후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된 쿠바에 잦은 쿠테타 발생으로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피신하고 그곳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게 된다.

 

사르트르가 “20세기에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 칭한 체 게바라(1928-1967)는 신념에 따라 행동한 혁명가였다. 아르헨티나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의학을 공부했다. 20세기 초 남미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멕시코에서 피텔 카스트로(Fidel Castro)를 만나 혁명동지가 된다. 86명의 동지들과 배를 타고 1956년 쿠바에 입성하다 발각되어 12명만 생존해서 게릴라 투쟁을 한다. 1958년 말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승리, 이듬해 195911일에 독재자 바티스타는 도미니카로 망명하고 쿠바혁명은 성공한다.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 정부에서 산업부 장관과 국립은행 총재(1959-1965)를 하고 볼리비아로 떠난다. 볼리비아에서 정부군에게 체포된 체 게바라는 총살당하고 30년 후에야 사체가 쿠바로 이송되었다.

 

카스트로의 쿠바는 소련의 붕괴(1989)로 지원이 끊겨 북한처럼 경제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 때 120만 명의 쿠바인이 미국 마이아미로 이민 갔다. 카스트로는 30년의 통치를 동생 라울에게 이양(2008)하고 201690세로 사망했다.

 

옛 아바나 거리의 건물 벽화에서,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오른쪽 끝)는 스페인 사교 클럽의 스페인 사람들이 모두 나가는 날이 올 것이다고 쿠바인(옆자리)에게 말하는 장면.

 

두 사람의 어니스트는 관광산업의 일등 공신

두 사람의 어니스트가 쿠바를 살리고 있다는 말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어니스트 체 게바라를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남긴 자취를 따라 관광객이 움직이고 그들을 기린 기념상품들이 쿠바를 찾는 이들의 추억을 만든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쿠바, 미국, 파리, 스페인,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며 작품 생활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소설가이다.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코히마르 바다가 배경이 된 소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초기 기자생활에서 영향을 받아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이 특징이다.

 

혁명 직후 카스트로 (왼쪽)가 체게바라와 함께 연설하는 장면.

 

쿠바는 헤밍웨이 취향에 꼭 어울리는 곳이었다. 바다낚시를 좋아하고, 알록달록 채색의 쿠바거리 건물, 모히토와 다이끼리가 있는 라 보데기타나 엘 훌로리디타 술집들이 헤밍웨이가 시간을 즐긴 곳들이다.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은 붐비는 관광객들 때문에 이름난 바를 구경만하고 만사나 호텔 옥상에서 가이드가 사준 모히토를 마셨다.

     

헤밍웨이가 소설을 썼던 아바나의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호텔 511-종을 울리면 방안에서 안내인이 문을 열어준다. 구석에 침대 하나, 오래된 타이프라이터와 작가의 소설책이 전시된 유리 케이스가 있다. 협소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아바나 전경이 시원했다. 또 어떤 모습을 보았을지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들었다.

아바나 교외(San Francisco de Paula) 마을에 헤밍웨이 저택(Finca Vigia, Lookout Farm)이 있다. 사냥에서 얻은 짐승들 박제와 도서, 작가의 물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이다. 카스트로와 친분이 좋았던 포스터가 보이고, 유명 배우 게리쿠퍼, 에바 가드너등이 체류했다 한다. 헤밍웨이의 자취는 코히마르 바다가 절정이다. 혁명 후 쿠바를 떠나야만 했던 헤밍웨이는 미국 아이다호 집에서 이듬해 자살했다. 코히마르 어촌 어부들은 함께 낚시했던 소설가 친구를 기려 어부들의 배에서 떼어낸 스크루를 기부해서 작가의 흉상을 만들어 17세기 요새 옆에 세웠다. 멀리 바다로 향한 작가의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헤밍웨이가 머무르며 집필했던 암보스 문도스 호텔 511.


코히마르 바닷가에 세워진 헤밍웨이 흉상.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은 동상 곁에서 사진을 찍어 핸드폰에 담으며 광활한 푸른색 바다를 바라보았다. 당시 어떤 느낌이었는지 물으니 인간은 파괴될 순 있어도 패배하진 않는다는 산티아고 노인의 말을 되새겼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쿠바는 어떨까? “쿠바는 천천히 조금씩 변할 것이다. 사유재산을 인정해도 체제를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란 단서를 달아 헌법이 개정되었다고 들었다. 파란 바다를 따라 길게 뻗은 아바나 말레콘(방파제)에 석양을 보러 오는 이들은 시름을 잊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은 “1960년대의 올드 카를 타고 방파제를 따라 달렸다. 번개처럼 지나가버린 순간이었지만 쿠바의 그 바다는 가슴속에 차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재규 총장이 선물로 보낸 한국 백자 도자기를 받고 즐거워하는 모습. 왼쪽 라냐 회장, 오른쪽 카를로스 회장.


한인문화센터를 방문하여 안토니오 원장 (왼쪽부터 세 번째)과 한인 4~5세들과 함께.

 

Cuba와 학술교류는 시간을 두고

아바나 방문 중 박 총장과 김 이사장은 한인문화원과 아바나 대학을 둘러보았다. 아바나 대학 졸업생들로부터 전공 분야, 장학제도, 학술교류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또한 한인문화원에선 한국말과 K-POP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 한인 4~5세들을 만났다. 박 총장과 김 이사장에게 당시 소감에 대해 질문했다. “안토니오 원장은 한국인의 모습이 남아있었고 다른 사람은 외국인의 모습으로 얼굴은 달랐지만, 핏줄은 끈끈했다라며 학생·교수들의 쿠바 관광과 사회체험을 위한 여행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학술교류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고 전망했다.

 

나가며

박재규 총장은 통일부장관 역임,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 한반도 평화정착에 이바지한 공로로 프랑스 시라크재단이 수여하는 제1회 분쟁방지상 심사위원특별상(2009. 11.6) 수상 등 평화·교육·통일 분야 산증인이다. 라냐 회장은 스포츠 역사에 기록을 남긴 사격 분야의 영웅이다. 카를로스 슬림 회장은 세계적인 갑부다. 세계 초일류 글로벌 리더 삼형제 이야기를 들으며 국경을 초월한 서로의 마음 씀씀이가 민간외교의 역할을 담당하며 국가간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애틀랜타와 쿠바에 대한 역사와 문화 등을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 사진 경남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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