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방학
류성훈
당연한 듯 걷다, 줄어든 팔뚝을
슬쩍 잡을 때, 미열이 건너온다
매번 채워야 하는 내 배가 번거롭고
안도,라는 단어가 문득 생각나지 않을 때
젊은 구름들에게도 미소한 끝들이 있어
식은 그릇 같은 저녁을 골목 어귀에 두고
두꺼워짐에 서투른, 제 몸 나이테 어디쯤
넋을 태우는지 모르는 나무들이
깨끗한 발과 함께 멈춘다 닳을 일 없어
너와 네 헛된 옷깃을 부검하듯
살아 더 눈부신 목소릴 자꾸 긁는다
바지 뒷단이 끌리기 시작할 때
터진 종량제 봉투처럼 쏟아지는 저층운을
볼 수 있을 때, 녹이 앉은 줄만 괜히 뚱겨 보다
어스름 뒤편에 얇은 이불을 펼 때
오늘의 예보는 어떤 국지성 호우도 적중한다
명백히 무너질 내일의 기상을 다짐,이라 부르자
앞으론 착하게 살지 않겠다 모든 허기가
따뜻한 우유처럼 목을 넘어가기를, 새벽
세 시의 쓰레기차 번호를 외우면서
아직도 역전,같은 말처럼 촌스럽고
제 발가락이 밉지 않을 방법만 누워서
궁리하는 시절이 있었다 앵글로 만든 책장이
외로운 공기만 붙잡다 놀이처럼 녹 피우는
잠시, 서른의 방학이 섣불리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