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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국제기구 민간단체 세계평화나눔재단, 세계평화소년연합...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영웅 소헌영 이사장, 67개국 700명 초청


 
한국전쟁 직후 한국을 찾은 UN한국재건위원회(UNKRA)에 보고된 내용 가운데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은 피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폐허가된 땅에서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던 세계 최빈국 나라가 일군 기적 같은 발전에 지구촌이 놀란다.


국경 없는 세상에서 대한민국 발전상을 세계에 알려 큰 박수를 받는 곳이 있다. 세계평화나눔재단, 세계평화소년연합은 6.25 한국전쟁 참전 국가 후손 2.3세 교포 유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 및발전상 체험 그리고 나눔과 평화를 실천하며, 미래세계평화지도자발 굴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소헌영 이사장에게 미래 후손들에게 어떻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계평화나눔재단, 세계평화소년연합이 하는 일은
 
세계평화 1% 나눔운동, 세계난민어린이돕기운동, UN소년 대사 선정을 통해 미래 세계평화와 화합에 중점을 두고 지구촌 전체로 확대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특히 6.25 한국전쟁 참전 국가의 후손 2,3세 청소년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한국의 발전상을 소개하고, UN소년대사로 임명해 한국의 홍보와 세계평화와 나눔, 봉사를 어릴 적부터 실천할 수있는 건강한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매년 열리는 세계평화소년나눔문화축제는 청와대 방문및 대통령 예방, 국회의사당 방문, 현충원 참배, 용산 전쟁기 념관 관람, 육군7사단, 육군삼사관학교(소장 서정열 학교장) 방문, 비무장지대, 판문점, 6·25참전비 참배, 경주 불국사 탐방, 삼성전자 전시관 관람, KBS 방문, 한국농촌체험 등역사와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의 장이다.
 
축제에 참여한 어느 어린이는 “세계의 많은 친구를 만나고 소통하면서 함께 평화를 나눌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며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생가에 다녀온 후, 그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할 린의 어느 학부모는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배우면서 우리 조상들의 조국을 직접 눈으로 연구할 기회는 자식들에게 오래도록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라며 감사의 답글을 남겼다.
 
지난 2016년에는 임동표(이학박사, MBG그룹 회장, 충남 일보 회장) 명예 이사장이 단장을 맡아 세계평화소년대사 11 명과 함께 뉴욕유엔본부를 방문, 청소년담당 아마드 알핸 다위 사무총장에게 시리아 난민 어린이 돕기 기금 미화 3만 불을 전달했다. 
  
지난 1월 9일에는 전준하 모아스 홀딩스 회장이 세계평화소년유엔연합 총재로 새로 취임하여 많은 기업 및 기관의 후원과 지원 협력으로 미래 세계평화지도자발굴육성에 주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계평화나눔재단, 세계평화소년연합은 1980 년 5월 5일 설립된 대한근로청소년장학회가 모태 다. 누구나 나라를 위해 열심히 뛰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한 사람의 절실한 조국 사랑이 기초가 되었다. 소헌영 이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 사람으로 시작된 인재육성

국경 초월 미래지도자 육성 발판되다
 
1980년 대한근로청소년장학회, 2001년 세계한인청소년보 호연맹, 2015년 세계한인소년연합, 그리고 38년이 흐른 오늘날 세계평화소년연합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1부터 2010년까지는 해외에 있는 한인 가운데 한국에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사람, 2015년부터 반기문 사무총장을 모토로 6·25한국전 참전국 후손을 초청했다. 지금까지 67개국 700 명 가까이 된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성수동 뚝섬에서 삼성전자 대리점을 하면서 30대 초반에 로타리 회원이 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당시 인근에는 시골에서 중학 교만 졸업하고 상경해서 공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습니 다. 그들이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게 장학회 설립을 계획하고 고심 끝에 당시 이세기 의원을 만나 부탁했습니다. 저의 부탁을 듣고 그분이 오리엔트시계공장 사장을 찾아가 여섯시 퇴근을 네시에 앞당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다른 공장은 야근 때문에 안됐는데 시계공장 사장은 흔쾌히 허락해주더 군요.”
 
당시 심정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전라도 고창에서 온 아이가 매우 착하게 보였습니다. 그때가 5월이라 내년 3월에 야간 고교에 보내주겠다고 말하니 당장 가고 싶다며 의지가 완강했습니다. 지방노동청 등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허락이 떨어졌고, 성동기계공고에 직접 찾아가 입학시켰습니다. 교련복과 학생복을 내어주더군요. 평소 제때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었는데 그렇게 입고 싶었던 학생복을 보니 마치 제가 입학한 듯 뛸 듯이 기뻤습니다.”




 
시골에서 상경한 한 아이부터 시작한 장학사업 10년 후, 또 어떤 변천사가 있었는지 들어보자. “서초구로 와서 환경 운동을 하면서 만난 황산성 변호사가 전국 소년원 아이들을 교화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1990년대, 서울소 년원에 가보니 300명 되는 아이들이 전부 죄인이라는데, 제눈에는 죄인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들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반성문보다는 좋은 영화를 보여주고 감상문을 쓰게 했더니 감상문이 반성문이 되었습니다. 제주 소년원까지 전국을 다녔습니다.”
 
그렇다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해외에 나간 한국인들이 한국에 들락날 락하는 줄 알았습니다. 대사관 및 한인회장에게 들으니 평생 한국에 한 번도 못 와본 사람이 많더군요. 부모님은 한국 사람이니 그 자식은 한국인이 맞는데, 타국에서 태어나 한국말도 못 하고 모국어를 배우기는커녕 조국에 대해 알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2001년도 태국에서 36명을 처음으로 초청했습니다. 10시간 이상 비행기 타고 오는 나라도 있는데 북한은 가깝지 않습니까. 12차례 북한에 있는 민족단군협의회에 다니며 초청하려 했으나, 다음번에는 보낼게요 라며 여지를 남기더군요. 끝끝내 성사되지 못해 아쉽습니다.”라며 해외에 있는 아이들이 얼싸안고 반겨주면 내색하지 않았던 마음속 외로움은 간 곳이 없고 행복한 마음이 밀려든다고 한다.
 
그가 그려가는 미래 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역대 대통 령도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저의 멘토 반기문 사무총장 같은 분을 후손들 가운데 또 탄생시키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그리고 세계 난민 고아를 한국에 입양시켜 세계평화소년센 터(고아원) 설립이 목표입니다. 30명 정도 어른이 될 때까지 성장을 책임지는 겁니다. 자금은 8억 정도 확보되었는데 30 억 조성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투철한 사명감으로 38년간 봉사단체를 이끌면서 말로 표현 못할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사회에서 만난 인연 가운데 마음속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지 물었다.
 


씨앗 역할로 단체 성장 밑거름된 임동표 MBG그룹 회장
 
세계평화를 위한 진정한 나눔을 주신 서종로 회장과 김민자 회장 등 모든 분들이 고맙지만, 특히 세계평화소년센터 (고아원) 설립의 씨앗 역할을 해준 임동표 MBG그룹 회장이 가장 고맙다고 한다. 왜 그런지 이야기를 들으니 이유가 특별했다.
 
“비슷한 단체를 만드는 사람, 봉사단체를 가져가고 싶어 하는 사람 등 의욕은 많아도 신뢰가 가는 사람은 없었습니 다. 오직 한 분 임동표 회장님이 가장 잘하실 분이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당시 임동표 회장의 답변이 남달 랐다.
 
임 회장이 UN본부에 다년 온 후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론을 말했다. “이 단체는 소헌영 이사장이 해야 합니다. 땅을 파는데 곡괭이가 필요한 것처럼 모든 연장은 쓰임새가 다릅 니다. 씨앗을 뿌리는 역할은 제가 담당하고 소 이사장은 뿌려진 씨앗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맡으세요. 그러면 세계평화 소년센터(고아원)가 숲을 이룰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돕겠습 니다.”라는 뜻을 밝혔다. 소헌영 이사장은 지면을 통해 고마 움을 전했다. “당신이 있어 정말 감사하고 다음 생이 있다면꼭 만나서 제가 다시 돕고 싶습니다.” 문득 나눔의 삶을 실천 해온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다.
 


어머니는 인생의 큰 스승 자식에게 그런 부모의 지혜 느끼다
 
열 살 때까지는 집안이 잘살았다. 어린 헌영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이랬 다. 꽁보리밥은 식구들이 먹고도 2~3명은 더 먹을 수 있을 만큼 가마솥에 넉넉 하게 지었다. 넓은 마루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밥 위에 열무김치와 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서 먹기도 했다. 여럿이 나눠 먹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엄마는 누군가가 밥을 못 지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치마 속에 밥을 가려서 그 집에 가져다주었다.
 
어린 헌영은 16세 청소년이 되었다. 어느 날 쌀 세말을 팔아서 서울로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읍내까지 20리길, 엄마 몰래 마차에 쌀을 싣고 안성에 가서 그 쌀을 팔고 막연히 서울로 향했다. 고생이 시작되었다. 일 년 동안 집에는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엄마는 소식 없는 막내가 죽은 줄 알고 낙담이 컸으며 정신을 놓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뒷얘기를 들었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보니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도 많고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부모 에게 못했던 모습을 자식에게 받으니 감개무량하다고 한다. 아들과 딸 3남매 모두 고맙다. 그중 둘째 딸 지선은 또 달랐 다. 본인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드렸다. 어디 가서 밥을 사라며 말하고, 통장을 점검하며 잊지 않고 돈을 채워놓는다. 그런 모습에 어릴 때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울컥해져 눈시울을 적신다고 한다.
 
당신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영웅
 
외국에 나가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얼굴이고 자존심이다. 이름을 묻기 전에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먼저 물어본다. 그런데 모습은 한국인인데 모국어를 모르니 뿌리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작된 세계평화나눔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말로만 듣던 부모의 조국을 보는 경험을 통해 후손들에게 꿈을 만들어주고 있다. 소헌영 이사장을 비롯한 나눔과 봉사를 펼치는 모든 사람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영웅이다.
 
글 박홍시 사진 세계평화나눔재단 제공 
 

 
Proud Korean hero who is the chairman of the World Peace Sharing Foundation and the Children Federation of World Peace,
 
So hun-young has invited 700 young lives from 67 countries! 
 

 
There are organizations that capture global attention by informing the world about the development of Korea.

The World Peace Sharing Foundation and the Children Federation of World Peace have invited the second and the third generations of the Korean War Veterans from all over the world. The purpose was for the young generation to visit Korea and experience the history, culture, and development of Korea, practice the spirit of sharing and peace, and be fostered as future global leaders. So far, 700 people from 67 countries have been invited. We were interested in hearing the story of So Hun-young and his passion towards educating many descendants to love the country they have originally come from.
 




What World Peace Sharing Foundation and Children Federation of World Peace do
 
In 1980, the Korea Youth Scholarship Foundation was born. Today, 38 years have passed by and the name was changed to Children Federation of World Peace. Through the various activities such as 1% World Peace Sharing Movement, the Movement for World Refugee Children, and the selection of the UN Children’s Ambassador, the Children Federation of World Peace has focused on promoting world peace and harmony that had been expanded to the whole global village. In particular, the federation has been planting a healthy spirit for UN Ambassadors to promote Korea and actively engaged in the ideas of pursuing world peace, sharing, and service for others from early age. In 2016, Professor Yim Dong-pyo (Ph.D in science, MBG Group Chairman, President of Chung-nam Ilbo) who is the Honorary Chairman of the group visited the headquarter of the United Nations in New York along with eleven ambassadors for world peace and delivered $ 30,000 for Syrian Refugee Children’s fund to UN secretary-general envoy for youth, Ahmad Al Hindawi.



 


Chairman So Hun-young nurturing future leaders beyond the border
 
What made him interested in such service?

In the 1980s, there were many children who graduated from middle school in the country and came to Seoul to go to factories. He first established a scholarship for those children to attend high school at night. Ten years after the start of the scholarship, Hun-young began edifying juveniles at reformatories nationwide. Kids were edified when they were asked to write what they have learned after watching a educational movie. He then heard from Korean ambassadors and the presidents of Korean associations in different countries that there are tons of Korean descendants who have not visited South Korea ever in their lives. Hun-young began to invite them to South Korea. He still longs for North Korean children to visit South Korea once some day. Hun-young’s next objective on future blueprint is to establish World Peace Children Center (Orphanage). Hun-young wants to continue to support and foster about 30 kids until they become adults and future leaders pursuing world peace. He is grateful to everyone who has given him a support but particularly thankful to MBG Group President Lim Dong-pyo. After visiting UN headquarters, Lim said he would do everything he can in order to help World Peace Children Center to grow. Chairman So Hun-young would like to convey his gratitude for Lim through this page of Korea News.




 


You are a proud Korean hero!
 
When we go abroad, each of us becomes the ambassador of Korea and Korean pride. Sometimes, people ask which country they have come from prior to asking what their names are. However, despite of Korean appearances, there are many Korean descendants who are unable to speak a word of Korean, not knowing their roots. That is one of the reasons World Peace Sharing was born and helped those descendants to visit the country their parents have come from and dream of different future after the visit. Everyone who carries out sharing and service is a proud Korean hero.
 
Translated by Joseph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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