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5 (월)

  • 흐림동두천 13.4℃
  • 흐림강릉 9.7℃
  • 흐림서울 12.8℃
  • 흐림대전 12.6℃
  • 흐림대구 11.9℃
  • 흐림울산 10.8℃
  • 흐림광주 14.3℃
  • 흐림부산 12.2℃
  • 흐림고창 13.7℃
  • 흐림제주 15.4℃
  • 흐림강화 11.9℃
  • 흐림보은 11.5℃
  • 흐림금산 12.7℃
  • 흐림강진군 12.4℃
  • 흐림경주시 10.8℃
  • 흐림거제 12.5℃
기상청 제공
월간구독신청

[대기자 칼럼]

제2의 국정농단을 생각할 때다...

108.jpg

김시산

오래 전 영어 공부할 때에 읽었던 단편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유복한 가정의 청년이 창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결혼이 불가능하게 되자 깊은 좌절감 속에 빠진 채 여러 날을 고민하다가 자살을 한다. 그 때 작가가 그 청년을 통해서 한 말이 이것이다. “The contempt can not kill love.”(경멸이 사랑을 죽일 수 없다). 지성적으로는 결혼을 할 상대가 아니었지만 일단 사랑이라는 감정이 만들어지니까 결국 ‘지성’이 ‘감성’을 이길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과정에는 대체적으로 ‘지성’과 ‘감성’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여 결과를 만들어낸다. ‘지성’이라는 말에 연관된 단어로는 ‘이성’(理性), ‘논리’ ‘합리’ 등의 용어들이 있고, ‘감성’이라는 말에 연관된 단어로는 ‘느낌’ ‘분위기’ ‘정서’ 등의 용어들이 있다. 그런데 대체로 사람들은 논리적 사고에 의해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일보다 정서적 느낌과 분위기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향이 농후하다. 특히 군중의 심리는 더욱 그러하다. 지성적 판단으로는 분명히 큰 손실이 예상되는 경우라도 일단 감성이 자극되면 큰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감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향이다.

감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들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예를 들자면, 부부싸움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싸움과 전쟁은 감정에서 비롯된다. 자존심이 상하게 되면 감정이 생기고 그것이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다. 만 원짜리 물건하나를 가지고 시비가 시작되어 그것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면, 사람을 구타하여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때로는 형무소까지 가게 되어 재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말할 수 없이 큰 손실과 피해를 초래하게 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도 주변 국가들 간에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로 시작된 이슈가 서로간의 집단적인 감정을 자극하고 그것이 이성적 논리적 판단을 압도하면서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그 후에 수많은 나라들이 전쟁에 동참하여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의 손실을 가져 온 것이다. 조그만 성냥불 하나가 마침내 큰 산을 태우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감성적 판단과 정치 논리

대한민국의 정치는 소위 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한 정당정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당(黨)의 수는 여러 개일 수 있지만 둘로 구분하면 여당과 야당이다. 이상적인 정치를 논하자면, 여당과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건전하고 유익한 정책을 개발하고, 그 정책을 효율적으로 실현하여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을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야당은 그 정책의 성격과 효과를 면밀하게 연구하고 검토하여 제재를 할 것은 제재를 하고, 지지하고 지원할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정직하게 말하자면, 여당과 야당이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공조하는 모습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오늘 이 나라의 정당들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연결시켜서 건전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매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사회에서는 영원한 여당도 없고 영원한 야당도 없다.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제시하는 정책이나 당시의 당 대표 혹은 대통령이 어떤 담화문을 발표하고 나면,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지 간에 여당이 제시한 정책이나 제안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것이 야당의 정치 철학인 것처럼 느껴진다. 정권 교체가 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며, 그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 논리로 생각하면 대답은 간단하다. 여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전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국민들의 호응을 받으면 그 다음 정권 교체가 어렵다는 동기가 작동을 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아무리 부인을 한다 하더라도 의식이 있는 국민들은 대체로 그렇게 느끼고 살아간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감성적 정치를 극복하고 공공의 유익을 추구하는 지성적, 이성적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나타나면 좋겠다. 국민들은 그런 정치인을 원한다.
제2의 국정농단이 필요하다

요즘 한국 사회는 최순실 신드롬에 최면이 걸려있는 듯하다. 초등학생조차도 최순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 이름은 알고 있다. 지금 농가에서는 수백만을 넘어서 일천만 마리 이상의 닭들이 구제역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그런 민생의 문제는 깊이 다루어지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뉴스 매체는 최순실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 이 문제에 대한 시비를 가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 문제가 최선의 방법으로 종결되어 국가가 속히 안정을 되찾고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열심히 집중하는 시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최순실 사건과 함께 떠올라 온 국민에게 회자되는 단어 중의 하나는 ‘국정농단’(國政壟斷)이라는 말이다. ‘농단’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이익이나 권리를 독점하는 것”이고 ‘국정농단’의 의미는 “어떤 특정한 권리를 독점하여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 한다”는 뜻이다. 원래 ‘농단’의 뜻은 “깎아 세운 듯한 높은 언덕”를 말한다. 어떤 상인이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시장에 어떤 물건이 많이 있고 어떤 물건이 부족한지를 파악한 다음, 부족한 물건을 미리 사서 모아서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한다는 것인데, 맹자의 공손추(公孫丑)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작금의 이 사태를 좀 더 높은 언덕(壟斷)에 올라가서 현재의 형세와 미래의 전망을 정확하고 면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미래 한국 한국사회의 경제발전과 정치적 안정을 위하여 가장 효율적인지를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정권교체’를 위한 감성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기초한 전략을 세울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지성적으로 이성적으로 진지하게 토의하면서 보다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좀 더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형세를 면밀하게 관찰하여 보다 정확한 판단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는 또 다른 의미의 ‘국정농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