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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충·효 정신 속에 가정 행복, 기업 성공, 나라 사랑 담는다

(주)세원크레인 박명옥·오세원 대표

   
▲ 제5회 충·효 우리의 얼 한복대회에서 신사임당상을 수상했다.

21세기 지도자상의 모습은 다양하다. 학문을 많이 배워서 유명한 사람만 바람직한 지도자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공부를 삶에서 실천하고 옛 조상들의 가르침인 충·효 정신을 잊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사람.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를 떠올려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자신이 자신의 마음자리를 올바르게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21세기 지도자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과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과 같은 사람은 사회 맨 밑에서 땀으로 공부한 주인공들이다. 삶을 굳세게 헤쳐가는 또 다른 지도자를 찾아 사회 모범적 인물로 삼는 기획을 마련했다.

 

박명옥·오세원 부부를 초대합니다  
대한뉴스 주최, 대한문화진흥회 주관,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열린‘뉴욕페스티벌 in 여주 2015와 함께 한 제5회 충·효 우리의 얼 한복대회’에서 성인부 특별상인 신사임당 상에 (주)세원크레인 박명옥 대표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주변 지인은 21세기 지도자로 박명옥 대표를 추천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여성의 몸으로 건설현장에서는 산업역군으로서 일익을 담당하고, 사회에서는 정직과 신뢰로 상도정신을 지키고, 직장에서는 자상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직원을 내 식구같이 대하고, 가정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도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7월의 토요일 점심 무렵,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 있는 세원크레인 제1주기장을 찾았다. 그날은 주말인데도 직원들이 쉬지 않고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었다. 기자가 먼저 박 대표에게“신사임당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라며 운을 떼자 박 대표가“뭐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데 부끄럽습니다”라며 겸손한 미소를 건넸다. 계속해서 기자가 질문했다.“얼마 전 딸을 시집보내면서 딸에게 한복을 입고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라고 하셨다는데 무슨 이야기입니까?”라고 묻자 동석한 오세원 대표가 먼저 말을 했다.“한여름 무더위에 한복을 입고 가라니까 딸이 우리 엄마는 조선왕조시대 사람인가 봐요~라고 말하더군요.”, 박명옥 대표는 이렇게 답변했다.“조상님께 인사드리러 가면서 청바지 입고 가서야 되겠습니까. 결혼할 때 한복은 왜 맞추는 건데요. 한 가문을 예로써 대하는 전통을 따르기 위함이죠.”

   
▲ 공장 텃밭에서 잘자란 감자를 수확을 하고 있는 박명옥 대표와 박혜숙 기자

부모를 공경하는 정신
박명옥 대표의 집안은 불교를 믿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어떻게 조상을 모시는지 보고 자랐는데 시집와서 보니 시댁은 기독교 집안이었다. 그땐 새댁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는 시댁 가풍을 바라만 보면서 속내를 밝혔다.“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나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박 대표는 시댁의 큰 형님이 교회에 나가는 관계로 집에서 제사를 못 지내자 음식을 장만하여 산소로 가져가서 정성을 올렸다. 햅쌀이 나오면 돌절구에 직접 쌀을 빻고 체에 치고 햇팥을 얹어 시루에 쪄서 조상에게 인사하는 것도 거르지 않았다.

선대를 잊지 않고 모시는 방법에서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생각하는 방향의 차이는 결국 문화의 차이이기도 하다. 핵가족 시대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다. 제사를 지내는 기일에 조상은 정성을 먹고, 가족들은 음식을 먹으며 눈빛을 보고 담소를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시집오기 전 박 대표는 처녀농군이었다는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정직이 최고의 무기라 여기는 정신 
경기도 광주 도척이 고향이며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집안은 머슴을 부릴 정도로 넉넉했으나 부모가 돌아가시자 딸만 셋인 집안에서 머슴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때부터 친구들 학교 갈 때 손에는 낫 3~4개를 들고 산에 가서 땔나무를 마련했고, 등에는 똥지게를 지고 참외, 수박, 딸기 등 농사를 짓는 험난한 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수확물을 시장에 내다 팔면서 신념이 남달랐다. 속여서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 누구나 한 번쯤 물건을 사면서 위의 것은 크고 좋은데 밑의 것은 보잘것 없어 겉 다르고 속 달라 실망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녀농군이 내놓는 딸기는 달랐다. 물건의 좋고 나쁨이, 크기가, 중량이, 겉과 속이 모두 똑같았다. 오히려 상회직원들이“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며 물건을 조금 다르게 포장하려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 호통을 쳤다. 그 후 사람들은 처녀농군의 딸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고 살피지도 않고 믿고 가져갔다. 정직함으로 신뢰를 쌓고 실력도 농학박사를 능가하는 수준이었지만 농사가 어찌나 고되고 힘들었던지 농사만 짓지 않는 사람이면 시집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초롱초롱한 자식의 눈망울을 보고 다시 용기를 내다    
박 대표의 그런 바람으로 당시 도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세원 대표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박 대표는 시골에 살았지만 결혼할 때 예물로 로렉스 시계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준비할 정도로 부유한 가정이었다. 당시 로렉스시계는 일반사람들이 잘 모를 정도의 고가제품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사업실패로 부도가 나서 어려움이 닥쳤다. 내 집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다시 지하 단칸방 월세로 이사 다닌 것만 10번 이상이었다. 박 대표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난 피해자인데~ 나 혼자라면 죽어도 상관없지만 자식들이 무슨 죄가 있나요~ 그래도 자식만큼은 올바르게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김밥 두 줄로 하루를 넘기는 비참하면서도 힘든 생활로 생계를 꾸렸다. 자식들의 눈망울 속에서 다시 용기를 내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모텔에서 카운터 일을 보기도 하고 오만가지 궂은일을 다 거쳤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해보지 않았던 건설현장에서, 이른바 노가다라 불리는 막노동 중장비 일에 손을 대게 되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주)세원크레인의 태동
돈을 이리저리 꿔서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먹지 않고 쓰고 싶은 게 있어도 쓰지 않고 근검절약했으며, 경매가 있으면 전국 어느 곳이나 발품을 팔러 다녔다. 강한 남자들만 있는 경매장에서 여자라고 깔보고 공갈치는 남자들도 많았다. 부속 하나를 사도 세 군데 이상 직접 다녀보고 견적을 냈다.“내가 같이 뛰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인생에는 공짜가 없더군요.”

1995년 세원크레인이 태동했다. 크레인 1~2대와 직원 1~2명으로 시작해 실전을 쌓는 다양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날 크롤라크레인, 항타전용기 전문업체로 크레인 및 크레인 관련부품의 수입과 수출, 모든 건설장비의 임대 및 매매,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몇 손가락에 꼽는 최고의 업체다.

세원크레인의 서울 본사 사무실은 남편 오세원 대표가 상주하며 대내외적인 업무를 총괄하고 모든 거래가 이뤄지는 동맥 역할을 하고 경기도에는 4군데의 주기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정비공장 바닥에 기름 한 방울 흘린 자국조차 보이지 않게 깨끗이 하고 있다. 그래서 공장 주변 청정 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는 등 배울 점이 많다며 전국에서 롤 모델로 벤치마킹하러 온다고 한다. 

남에겐 고철덩어리가 내겐 벗이고 동료 그 이상이다
크레인은 박 대표의 눈에는 그냥 쇳덩어리가 아닌 돈을 벌어다 주고 꿈을 키워주는 벗이고 동료이고 동반자 같은 산업역군의 모습으로 비친다. 현장에 나갔다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지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지! 고생했구나~”라는 마음으로 사람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목욕시키듯 기계를 닦고 기름칠하고 수리를 한다. 다시 건설현장으로 씩씩하게 나갈 때는 무탈하게 잘 갔다 오라며 인사말을 건넨다.
박 대표는 이제 살만하고 돈도 쓸 만큼 벌었다. 그래도 일주일의 절반은 공장에서 지내며 5천 원짜리 일바지를 입고 공장과 마당 청소를 하고 한쪽에 있는 밭에서 감자, 파, 고구마, 오이 등 무공해 농사를 짓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박 대표가 잡부 아줌마인 줄 알 정도로 검소하다. 검소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의아했다.

“일 시키고 월급 주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고용주는 직원들의 딸린 식구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손톱에 매니큐어나 칠하고 고급 외제차 타고 골프 치러 다닌다면 일하는 사람들이 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그들이 기름옷 입고 현장에서 일할 때 나는 텃밭에서 기른 무공해 채소로 직원들의 밥을 짓지요. 어떻게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서로 위로하며 발전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평소 직원들의 식사를 손수 만들고 홍삼과 당귀를 넣어 끓인 음료 및 간식을 항상 준비해 놓고 특히 직원 생일에는 미역국을 직접 끓이며 꽃바구니에 금일봉을 담아 축하를 건넨다.

한국 엄마! 그리고 어머니의 정을 남기다 
어떤 직원은 입사 후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여기서 오래오래 일하고 싶습니다.” 무슨 말인가. 박 대표는 자그마한 실수도 커다란 실수도 잘못을 깨달았으면 후벼  파서 상대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지난 일은 무릎  밑에 두고 다친 상처가 새살이 돋게 보듬어주는 마음자리를 갖고 있다. 20년 된 창립멤버 직원부터 최근까지 특히 기억에 남는 직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국에서 온 사춘기 청년이 한국 업체에서 2년간 일하고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딱한 사정을 듣고 박 대표는 그 청년, 링 권청을 데려왔다. 말도 통하지 않아 몸짓으로 의사소통하고 글씨는 그림처럼 그려가며 일을 가르친 지 어느덧 7년. 절대 자동차를 끌고 나가면 안 된다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만 차를 끌고 나갔다가 상대방의 잘못으로 차 사고가 났다. 그 청년은 무면허가 밝혀지고 잠깐의 실수로 중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중국에 3층짜리 집도 짓고 결혼도 했다. 소망은 다시 한국 엄마 곁으로 오는 것이다.

박 대표가 바로 한국 엄마다.“나 언제 한국 가?”라며 목멘 소리로 국제 전화가 걸려온다. 만약 악덕 업주에게 돈을 못 받은 상태에서 한국을 떠났다면 그 청년은 지금까지 한국 사람을 멸시했을 것이다. 박 대표는 그 청년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손수 뜨개질한 유아용품과 여러 가지 선물을 챙겨서 자식들과 함께 중국을 찾았고 다시 한 번 더 한국 어머니의 정을 남기고 돌아왔다. 
 

   
▲ 무더위에 한복을 입고 조상님 산소를 찾아

충·효 교육은 부모 뜻을 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박명옥·오세원 대표 부부는 슬하에 딸 유미, 아들 민우를 두었다. 딸 유미는 얼마 전 시집을 보내면서 효를 실천했다. 아들 민우는 군대에 보내면서 충을 실천했다. 오세원 대표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면서 의사도 존중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해병대에 가는 것이 어떠냐?”아들은 곧장 해병대에 지원했다. 해병대는 적응훈련 기간을 이겨내야 한다. 해병대 훈련 교육자가“몸이 힘든 사람은 일어서”라고 하니까 아들은 벌떡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뒤 다시 신체검사를 마치고 해병대에 지원하여 국군의 의무를 다했다. 주변에서는 다시는 안 갈 줄 알았는데 두 번씩이나 지원한 사례는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일차에 떨어진 것을 또다시 지원하여 다녀왔다. 박명옥 대표는 남편에게“돈 없는 사람도 빼려고 백을 쓰는데 전쟁터로 자식 보내는 당신이 그러고도 아비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월급 외에 생명수당이 따로 있었고 이 한 목숨 나라에 바치겠다는 유서도 썼다.

아들은 다목적군을 다녀온 뒤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동양공업전문학교 전자과 졸업 후 영국 석세스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때 총장과 함께 표지모델을 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으며 한인회학생부 회장을 지냈다.

당신이 바로 사회 지도자입니다
박명옥 대표를 사회 지도자라 칭하는 점은 무엇일까. 배곯고 힘들었던 시절을 절대 망각하지 않았고, 정직과 상도정신을 지켰고,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배려를 아끼지 않았고, 무엇보다 부모에게 효로써 대하고 아내의 본분을 다하고 어머니로서 자식을 훌륭히 키우니 이런 모습들이 바로 사회 지도자임이 틀림없다.

한편, 박 대표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과도한 스트레스와 호르몬 과다분비로 인한 섬유근육통으로 무거운 것을 들면 안 된다. 그래도 직접 농사짓고 밥하고 청소하고 장부정리를 마치면 내일의 계획을 세운다. 그동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지면 관계상 다 이야기할 수 없어 이만 줄이며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전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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