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월간구독신청

인물&탐방

경남대 박재규 총장, 소용돌이 속에 한 사람의 외교가 열매를 맺었다

6대 교역파트너, 상호 방문객 115만명

   
▲ 마잉주 대만총통이 대만을 상징하는 목도리를 박재규 총장에게 직접 둘러주고 있다.

1948년 우리정부와 대만은 공식수교를 맺었다. 양국은 가장 비슷한 처지로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친한 친구관계를 유지했지만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과 흐름 속에 한국은 중국의 손을 잡고 대만과 국교를 단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만정부는 단교 후에도 변함없이 신뢰를 보여준 경남대학교 박재규 총장을 대만으로 초청해 그들이 어려울 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에 대한 고마움을 중국문화대학의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 수여를 통해 전달했다.

박재규 총장과 대만의 각별한 관계는 지난 2월 28일부터 5일간 대만의 초청방문에 동행했던 일행의 이야기를 통해 더욱 잘 알게 되었다. 마잉주 총통과의 면담을 비롯하여 대만의 여야 정치지도자들, 전직 대만 서울대표들을 비롯한 외교관들, 그리고 자매대학 이사장과 총장을 비롯한 교육계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도 한결같은 표현이“박 총장은 지난 40년간 변함없는, 대만의 진정한 친구”라는 것이었다. 특히 대만이 외교적으로 어려울 때 박 총장은 항상 자신의 유불리를 생각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대만을 도와주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박 총장이 그동안 보이지 않게 대만을 위해서 활동한 여러 에피소드를 직접 옆에서 목격한 지인들이 중국문화대학에서 있었던 명예 박사학위 수여식의 공식적인 축사에서는 물론 오만찬 중에도 이를 소개함으로써 박 총장의 활동이 더욱 돋보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박 총장의 대만 지인들은 대만 도착일 환영만찬에서부터 명예 박사학위 수여식, 그리고 뒤이은 송별만찬 등 연3일 동안의 행사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여 자리를 함으로써 우정의 두터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40여년이라는 오랜 시간 박 총장의 대만에 대한 변함없는 마음과 행동을 통하여 맺어진 우정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더욱 숙성되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만 지인들의 한결같은 부탁은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한국과 대만 양국의 우호관계를 증진하는 데 노력해달라는 것이었다.

   
▲ 대만 총통부에서 (좌로부터 박정민 교수, 박정진 교수, 한장규 회장, 방효철 회장, 윤대규 교수, 박재규 총장, 마잉주 총통, 박재규 총장 부인)

대만초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경남대 박재규 총장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그 성과를 직접 들어봤다.

-총장님께서는 최근 대만을 방문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로서뿐 아니라 통일부장관과 6.15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으로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 등에 기여한 공로로 대만 유명 대학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도 받으시고, 마잉주 총통 등 대만 정·관계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요 일정을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4일까지 대만을 방문했습니다. 방문기간 중 대만의 중국문화대학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3월 2일부터 3일까지는 마잉주 대만 총통뿐 아니라 민진당의 차이잉원 주석, 커원저 타이페이 시장, 쑤전창 전 총리 등 대만의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 한국-대만관계 발전 문제와 동북아 지역의 주요 현안 등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대만의 명문사학인 담강대학, 명전대학, 건국과학기술대학 등의 총장 및 관계자들도 만나 경남대학교와의 학술 교류·협력 확대에 관해서 논의했습니다.

-총장님께서 마잉주 총통을 만났다는 사실을 많은 언론매체가 보도해 알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마 총통과 가까운 사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말씀을 주로 나누셨는지요?

 마 총통은 지난 2009년에 이어 두 번째 만난 것입니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마 총통과 양안관계 및 남북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 및 주요 현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습니다.마 총통이 대만 정부의 대중국 정책 및 양안관계의 발전 상황에 관해 소상하게 설명해줘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는 2008년 취임 이후‘92컨센서스’,‘일중각표’,‘3불 정책’을 기초로 하는 양안의 평화발전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현재의 양안관계가 66년 역사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정된 시기라고 마 총통은 평가했습니다. 다만 대만이 외교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국제관계와 양안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부연 설명했습니다. 마 총통은 또한 한국과 대만의 경제·사회적 교류 현황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등 자세히 설명하면서 한국-대만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는 한국과 대만이 경제무역, 교육, 관광, 인적왕래 등 많은 부문에서 나날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양국이 2014년 무역 총액이 274.8억 달러(약 29조 9천억원)에 달하는 6대 교역파트너인 동시에 한국의 224개 대학이 대만의 115개 대학과 자매결연 관계이며, 양국 상호 방문객 수가 2014년 115만명을 넘어섰다고 자세히 설명해줬습니다.

-마 총통이 현재의 양안관계가 가장 평화롭고 안정된 시기라고 평가했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양안관계가 어떻게 변화한 것인가요?

 최근 10년여 사이에 대만과 중국 사이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이 활발해지면서 양안관계가 급속하게 발전했습니다. 중국은 1949년 이후 무력에 의한 대만통일을 주장해오다가 1979년 개방정책 채택 이후 적극적인 평화공세로 對대만정책을 전환했습니다. 대만 역시 1987년부터 친척 방문 등 인적교류를 통한 다각적 양안 간 교류·협력을 촉진, 1990년 이후 적극적인 對중국 정책으로 변화했습니다. 대만이 對중국 창구로 해협교류기금회를 설립(1991.2)하자, 이에 대응해 중국이 해협양안관계협회를 설립(1991.12)했습니다. 양안은 해기회와 해협회를 내세워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준공식(準公式) 접촉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대만과 중국은 2008년 11월 4일‘대삼통[통항(항공), 통상(선박), 통신(우편)]’에 합의함으로써 양안 간 교류·협력이 본격화됐습니다.

-현재 양안 간에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에서 심도 있는 교류협력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안 간 교류협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주요 현황을 소개해주시죠.

 마잉주 총통은 대만과 중국이 이미 경제, 사법, 의료, 문화 등의 분야에서 실질적 교류협력에 관한 21개 항목의 협정을 체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범죄공동퇴치 및 사법공조 협정 △농산품 검역 협력 합의서 △표준 검사·인증 협력 합의서 △어선 선원 노무협력 합의서 △의약위생협력 협정 △핵안전협력 의정서 △투자보장 협정 △세관협력협정 등입니다. 마 총통은 양안 간 경제적·인적 교류도 매우 크게 증가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2003년부터 중국이 미국·일본을 제치고 대만의 최대 교역 상대가 됐고, 2011년에는 처음으로 양안 간 교역액이 1,600억 달러(174조원)를 돌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매년 대만 방문 중국인 관광객이 300만명 정도이고, 지금까지 누계는 1,400만명에 달하며, 중국을 방문하는 대만인도 매년 500만명을 상회한다고 전했습니다. 대만 내 중국인 유학생은 2008년 823명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3만 2천명이 유학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 총통은 특히 금년 2월부터 양안 사무를 주관하는 부처의 수장이 이미 3차례 만나 서로 관직 명칭(官銜)을 불렀는데, 이는 양안 역사상 처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첨예한 대립 관계에 있던 대만과 중국이 이처럼 발전적인 관계로 변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대만이 2008년 5월 마잉주 총통 취임을 전후해 중국에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표명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마 총통은‘不獨, 不統, 不武’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3불 정책’을 양안정책 기조로 천명하고, 3通의 전면적 실현 등 對中 관계 개선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습니다.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도 2008년 대만 부총통 당선자(4월) 및 국민당 부주석(5월) 등과 잇달아 만나 양안회담 재개 합의 및 對대만 유화정책을 표명(12월)했습니다. 이후 양안은‘先화해협력, 後통일논의’에 공감하며 상호 양보를 통한 신뢰를 구축했습니다. 2008년 6월부터 2012년 8월까지 해기회와 해협회 간 8차례 회담을 열어 양안 간 대화 재개 및 경제협력 심화·확대 등에 관해 협의하고 상당한 부문에서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중국은 대만의 2010년도 세계보건총회(WHA) 옵서버 자격 참가 동의에 이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겠다는 파나마, 엘살바도르 등의 제의를 처음으로 거절하며 대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대만이 對중국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는‘92컨센서스’,‘일중각표’,‘3불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요?

‘92컨센서스’와‘일중각표(一中各表)’는 1992년 11월 대만과 중국이‘하나의 중국’문제에 대해 각자 구두방식으로 표현한다’고 합의한 것입니다. 해기회(대만)와 해협회(중국)가 1992년 3월부터 1993년 3월까지 개최한 3차례의 예비회담 과정에서 합의된 것으로,‘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동의하되, 그 내용에 대해서는 각자의 해석에 따른다’는 의미입니다.‘3불 정책’은‘통일을 추구하지 않고(不統), 독립도 추구하지 않으며(不獨),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不武)’는 뜻으로, 마 총통이 對중국 정책의 기조로 제시한 것입니다.‘3불 정책’은 천수이벤 전 총통이 2007년 3월 발표한‘四要一沒有’(△독립을 해야 하고 △국호를 바로잡아야 하며 △신헌법을 제정해야 하고 △발전을 기해야 한다는 4가지 필요성과 함께 대만은‘좌우 노선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고 통일과 독립 문제만 있다’)는 독립노선과 비교되는 것입니다.그동안 대만은 중국과‘92컨센서스’,‘일중각표’,‘3불 정책’등에 기초해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조 하에서 경제·문화·인적 교류협력을 심화시켜왔습니다.

-마 총통이 추진한 對중국 정책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궁금합니다. 중국의 對대만 정책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지요?

 마잉주 총통이‘3불 정책’등을 표명하자 중국도 대만과의 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대화 재개, 정책결정기구 개편 등 적극적으로 호응했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은 2008년 말 對대만 유화정책을 표명한 뒤 왕이 당시 외교부 부부장을 국무원 대만 사무판공실 주임에 임명했습니다. 또한 중국의 對대만 정책을 총괄하는 당 대만공작영도소조 내 군 대표를 2인에서 1인으로 축소하는 대신 경제교류 담당 상무부장을 새롭게 임명하며양안 간 교류협력 강화를 적극 추진했습니다. 마 총통은 2012년 5월 제2기 정부를 출범시키며 취임사를 통해 중국과 대만 모두 동일한 중화민족임을 강조했고, 중국도 마 총통의 연임을 환영했습니다.

-양안관계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부작용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요?

 가장 큰 문제는 대만과 중국 사이의 경제적·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이 발전했지만, 이것이 정치·군사적 대결 상황 완화로까지는 연결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 등 지도부는 민간 학계차원의 의견교환에서 시작해 양안 간 정치 대화 개최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 나가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안 간 정치·군사적 문제 논의와 관련한 대만 내부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앞세운 중국이 전체적인 국력에서 대만을 압도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을 대만 국민들이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대만의 對중국 의존도가 중국의 對대만 의존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황인 것도 문제입니다. 2013년을 기준으로 대만의 전체 수출 가운데 對중국 의존도는 39.7%였지만, 중국의 전체 수출 가운데 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4.4%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해 대만의 해외 투자 중에서 對중국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3.7%에 달했지만, 중국의 전체 해외 투자 유치액 가운데 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그쳤습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인해 5년 전만 해도 대만 국민들의 절반 정도가 양안 통일을 지지했지만, 현재는 80~90%에 가까운 대만 국민이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2016년 대만에서 총통 선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대만에서 정권이 교체된다면 대만의 대중국 정책 기조가 변화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마잉주 총통은 국민당 정부가 정권을 연장한다면 총통이 바뀌더라도 대만의 對중국 정책 및 양안관계의 기조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만약 민진당 정부가 집권한다면, 과거 천 전 총통이 추진했던 것처럼 대만독립 노선을 추구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대만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양안관계가 과거와 같은 냉전적 대립관계로 회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 대한 대만의 경제적 의존도가 상당한 수준이고, 그동안 이뤄진 양안 간 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의 폭과 수준도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대만 국민 대다수도 양안의 평화공존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안관계의 발전이 경색국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남북관계에 시사하는 점이 매우 많다고 생각됩니다. 총장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마잉주 대만 총통은 현재의 양안관계를 지속하고 확대·발전시키는 것이 양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양안관계 발전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만 정부는 지난 7년간 성공요인을 발굴하고 실패요인을 제거하면서 관계 발전에 관한 경험을 축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양안관계 발전에 관한 경험을 한국과 공유하기를 기대하며, 이것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마 총통의 견해에 동의하며, 남북문제도 결국 교류협력의 확대·심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한의 상호의존, 특히 남한에 대한 북한의 경제적 의존도가 커질수록 우리가 남북문제에서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14년 12월 기준으로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가 약 5만 4천명인데, 만약 이것이 10배 규모였다면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한 압력을 쉽게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총장님께서는 통일부장관으로 재직하시면서 첫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신 바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되는 상황을 타개하고 남북관계가 발전적으로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북한은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흡수통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으며, 남북관계
는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을‘흡수통일’수단으로 오해하면서 남북관계가 악화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이후 남북 대화와 관계개선을 통해 남북간 신뢰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하면서‘드레스덴 선언’,‘통일대박론’,‘통일준비위원회 발족’ 등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러한 대북정책들을‘흡수통일’의 일환으로 오해하면서 남북관계는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경색 지속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양측 책임있는 당국자들 사이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접점을 모색해야 합니다. 북한은 대내 경제문제 해결, 체제의 안정적인 정착 등을 위해 대외관계 개선 및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도 남북관계 개선과 진전을 위해 허심탄회한 자세로 당국간 대화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북한의 사정을 감안해 큰 틀에서 대결과 압박보다는 북한을 포용하고 끌어가는 의연하면서도 유연한 자세로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 대만의 중국문화대학 장징후 이사장(좌측)과 박 총장
   
▲ 민진당의 차이잉원 주석(우측)과 박 총장
   
▲ 커원저 타이페이 시장(우측)과 박 총장

취재후기
 통일을 추구하는 중국과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은 정치적으로 갈등을 겪었지만 지금은 불통의 시대를 접고 서로 윈윈하는 협력관계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는 비정치권, 즉 경제, 사회, 문화의 끊임없는 교류가 그 바탕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와 대만의 관계도 갑작스런 국교단절 후에도 나라대 나라가 아닌 기업과 개인의 문화, 무역, 산업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어짐으로써 다시 화해의 길이 열리고 기다림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경남대 박재규 총장은 지난 40여년간 개인 사절단으로 변함없는 한국인의 정과 의리를 보여주었다.
정부는 대만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박 총장을 통해 그들은 대한민국의 신뢰를 본 것이다. 박 총장은 우리나라가 1992년 당시 동북아의 정세에 따라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단교했지만 지금은 양안관계가 평화로운 시기여서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좋아진 것이라 겸손히 말하지만 대만사람들은 박 총장을 통해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 진정한 친구로서의 모습을 본 것 같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