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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隨想] 진리의 상대성

   
▲ 김안제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

  이 세상에 진리(眞理, truth)라는 것이 있다. 참된 이치, 참된 도리라고 할 수 있는 진리를 철학에서는 실제적 관계와 사태를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는 판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는 상대성을 띌까, 아니면 절대성을 띌까? 긴 인류역사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어려운 질문이다.

  상대성이란 말은 모든 사물의 부분과 전체, 또는 부분과 부분이 독립하지 않고 서로 의존적 관계를 가진 성질을 뜻한다. 따라서 모든 가치의 절대적 타당성을 부인하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을 상대주의(相對主義, relativism)라 하고, 영원 보편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절대주의(絶對主義, absolutism)라 한다. 독일의 물리학자였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 Theory of Relativity)을 정립하였는데, 이러한 상대성이론에 의하여 시간과 공간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소위 사차원(四次元)의 세계를 구성하게 된다. 그래서 질량과 시간은 어떤 경우에도 불변으로 일정한 것으로 취급되어 왔으나 여기 사차원의 세계에서는 속도와 함수관계를 갖고 가변적인 것이 된다.

  일반적으로 자연적 법칙이나 진리는 절대성을 띄지만 사회적 원리나 도리는 상대성을 띄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현상에 관한 진리도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고 발명과 발견의 심도가 깊어질수록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들은 오래도록 지구는 고정되어 있고, 그 주위를 해와 달과 별들이 돌고 있다는 천동설(天動說)을 굳게 믿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그러하기 때문에 일반 사회뿐만 아니라 학계와 종교에서까지도 그 이론에 의문을 다는 사람은 없었으며, 기원전 4세기경에 고대 희랍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Pythagoras, 582~493 B.C.)가 지동설(地動說)을 처음 제기했지만 아무도 신봉하지 않았다. 16세기경에 이르러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 1543)와 이탈리아의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에 의한 과학적 주장과 증명에 의해 비로소 지동설이 인정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자연현상이 불변의 법칙이자 진리로 확립된 것은 지금부터 불과 500년 전이었던 것이다.

  통계학(統計學)에 검정이론(檢定理論)이란 기법이 있다. 이는 법칙과 이론 및 가설(假說) 등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검토·판정하여 진리로의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수리적 접근방법이다. 옳은 것을 진실(眞實, true)이라 하고, 옳지 않은 것을 허위(虛僞, false)라고 할 때,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거나 허위를 허위로 인정하여 멀리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옳은 자세이다. 사실은 진실한 것을 잘못 알고 그 진실을 배척하거나, 허위인 것을 잘못 판단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문제이다. 진실을 배척하는 잘못을 제1종 오류(誤謬)라 하고, 허위를 수용하는 잘못을 제2종 오류라고 부른다.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과 손실은 제2종 오류의 경우가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리나 참됨을 인정하지 않는 잘못보다는 허위나 거짓을 옳은 것으로 착각하는 잘못이 더욱 위험하고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리와 비진리를 판명할 수 있는 충분한 검증과 함께 정확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평가의 기준과 척도(尺度)가 다른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진리의 상대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어느 정도의 신축성과 가변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주만물의 움직임은 일정하지 아니하고[제행무아(諸行無我)], 모든 법칙에는 상주불변의 주체가 없다[제법무아(諸法無我)]. 진리가 갖는 상대성과 가변성을 강조하는 불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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