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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隨想]삼국사기와 삼국지

   
▲ 김안제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

한반도와 중국에 공히 삼국시대가 있었다. 한반도는 기원전 57년의 신라(新羅) 건국부터 후백제(後百濟)가 멸망한 936년까지의 993년간을 말하고, 중국은 220년의 위(魏)나라 건국부터 280년의 오(吳)나라 멸망까지의 61년간을 일컫는다. 이러한 삼국시대를 대상으로 한 역사서와 소설 등이 두 나라에 많이 집필되어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려 인종(仁宗) 때의 김부식(金富軾,1075~1152)이 기전체(紀傳體) 형식의 정사인『삼국사기(三國史記)』를 1145년에 50권 10책으로 편찬하였고, 역시 고려조 충렬왕(忠烈王) 때의 명승 일연(一然,1206~1289)은 야사인『삼국유사(三國遺事)』를 5권 3책으로 묶어 1285년에 내 놓았으며, 편년체(編年體) 형식의 역사서인『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는 조선조 세조(世祖)때 시작하여 성종(成宗) 때에 와서 서거정(徐居正,1420~1488)과 노사신(盧思愼,1427~1498) 등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모두 14권 7책으로 되어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일찍이 진(晋)나라 진수(陳壽. 233~ 297)가 삼국시대가 끝난 직후에 65권으로 된 역사서인『삼국지(三國志)』를 편찬하였고, 이로부터 1천여 년이 지난 원(元)나라 때의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 중의 하나인『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라는 소설을 120회에 걸쳐 발표하였다. 61년이란 짧은 기간의 역사를 가진 중국의 삼국시대가 어느 시대의 역사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인용되고 있는 것은 아마 이 소설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반도의 삼국시대는 이렇게 전개된다.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朴赫居世)에 의해 경주(慶州)에서 건국한 신라, 기원전 37년에 고주몽(高朱蒙)이 졸본성(卒本城)에 세운 고구려(高句麗), 기원전 18년에 온조왕(溫祚王)이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건국한 백제(百濟), 이렇게 세 나라가 700년간 각축을 다투다가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먼저 백제가 멸망하고 다음에 고구려가 멸망함으로써 676년에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로부터 216년이 흐른 뒤 허약해진 신라에 대항하여 892년에는 견훤(甄萱)이 완산주(完山州)에 후백제를 세우고 901년에는 궁예(弓裔)가 송악(松嶽)에 태봉(泰封)이란 나라를 세움으로써 후삼국시대가 열렸다. 45년간의 전쟁 끝에 모두가 새로 들어선 왕건(王建)의 고려(高麗)에 흡수됨으로써 길고 험난했던 삼국시대는 막을 내렸다.

  한편 중국의 삼국시대는 이렇게 요약된다. 후한(後漢) 말기의 혼란한 시기에 위나라 조조(曹操)와 촉(蜀)의 유비(劉備)와 오(吳)의 손권(孫權)이 패권을 겨루는 파란만장의 상황이 전개되며 이 과정에서 인간들의 선악과 희비가 교차되는 생생한 장면이 들어나고 있다. 성도(成都)에 도읍을 둔 촉은 263년 2대 43년만에 위나라에 망하고, 낙양(洛陽)이 수도였던 위는 5대 46년만인 265년에 신하였던 사마염(司馬炎)에게 멸망당했으며, 오나라는 도읍지 건업(建業)에서 4대 59년만인 280년에 사마염이 세운 진나라에 병합되고 말았다. 숱한 일화와 미담, 많은 사자성어와 전쟁무담도 이 시기에 나왔으며,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삼국시대는 우리나라 신라의 10대 내해왕(奈解王)에서 13대 미추왕(味鄒王)까지, 고구려의 10대 산상왕(山上王)에서 13대 서천왕(西川王)까지, 백제의 6대 구수왕(仇首王)에서 8대 고이왕(古爾王)까지의 기간에 해당된다. 즉, 중국의 삼국은 우리나라 삼국의 건국 초기 무렵에 존재하다가 사라졌던 것이다.

  중국 소설『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촉한의 유비가 제갈량(諸葛亮)과 관우(關羽)·장비(張飛)·조자룡(趙子龍) 등을 데리고 삼국을 통일하기를 바라지만 촉한이 가장 먼저 망하고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한국 역사를 배운 사람은 대부분 고구려가 통일하여 만주와 한반도를 하나의 영토로한 광활한 국토를 오늘날까지 전수해 주었기를 희망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나아가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인간의 소망이 그대로 실현되지 않음도 역사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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